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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책 리뷰/추천책

[책] 열정절벽 - 미야토쿠미츠

by 크라크라 2019. 2. 8.
열정 절벽
국내도서
저자 : 미야 토쿠미츠(Miya Tokumitsu) / 김잔디역
출판 : 와이즈베리 201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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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열정절벽, 부제는 성공과 행복에 대한 거짓말이다. 


이 책의 핵심 논의 주제는 "DWYL(Do What You Love)".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이외에도 아마도 뉴스나 자기계발서,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많이들 듣고, 봤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학습 혹은 체화한다. 좋아하는 일이 성공으로 이끌어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좋아함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회사가 끔찍하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과 재밌지만 돈을 적게 버는 일 중에서 어떤 일을 선택해야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전문직을 하러 떠나고, 누군가는 그래서 역으로 예술을 한다. 누군가는 골방에서 사업체를 차리고, 누군가는 회사로 들어간다. 


이 책을 절묘하게 잘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꼭 읽어봤으면 좋겠는 것이 많은 요소들의 핵심을 찌른다. 

과거의 시대에 노동이란 보통은 살기 위해서 해야하는 일, 가족들이 해왔기에 하는 일이었다. 그냥 그렇듯이 그것은 삶 자체의 일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현대로 넘어오면서, 누군가는 그것을 신에 대한 증명이라고 얘기했고, 자본주의 체제하의 지금에 와서는 우리들은 우리가 직업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자본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모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뇌의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선택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누군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선택한다. 누군가는 선택할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다. 저자의 주장은 "DWYL" 를 택한 사람이 많은 희생을 치렀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희생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성공한 누군가를 언제나 롤모델로 삼아서 희망할 뿐이다. 과거에는 위로 갈 기회도 없었지만, 이번 시대에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인 상황에서 "DWYL"를 따르라고 하는 것은 기만일 뿐이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유명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역시, 그에게도 예술은 노동이었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은 아니었다. 더욱이 스티브 잡스는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했을지 모르겠지만,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을 위해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그들은 이 일을 좋아해서 일을 했을까? 


 어쨋거나 나는 저자의 기본적인 논조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저자의 논의는 "DWYL"를 기준으로 진행되지만 사실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개인적으로는 Love or Not 이다. 사랑하건, 그렇지 않은 일을 하건 어디에선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자. 그것만으로도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각자 나름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문. 열정, 착취의 또 다른 이름.

1장.  인정받는 일의 위험성

2장.  고용주를 위한 열정

3장.  청춘, 희망 노동에 갇히다

4장.  열정을 측정하는 방식

결론. 일하지 않을 권리.


1장에서는 사회적으로 받는 인정에 그 사람의 직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본다. 미드 <굿와이프>, <인라이튼드>를 이용해서 근로자들의 존재감에 대해서 살펴본다.


 많은 시장이 근로자들의 사적 지위를 기준으로 돌아간다. 연애, 결혼시장은 물론이고 사업, 돈, 친구 관계까지 말이다. 그런 사적 지위는 결국 "시장에서 알아주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알아주는가?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 것을 이해받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하는  것인가? 


 사실 그런 것 같다. 일반인들은 이해받고, 지위를 획득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다. 대다수는 돈과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스카이캐슬의 결말 때문에도 꽤 논란이 있었는데, 그들은 획득할 지위가 필요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서 받은 지위가 있기 때문이다.(물론, 중간에 일이 있어서 그 지위가 사라진다면 모르겠지만.._) 그래서 저자도 얘기하는 것이다. 

 누구나 "DWYL"를 추구할 자유는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것을 권장하고, 하지만 부유한 자만이 그것을 위해 빚을 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2장에서는 근로자의 자율성에 대한 환상과 근로자에 대한 감시기술을 살펴본다. 

 서비스업(콜센터)와 학교, 직장의 관리자들에 대한 얘기를 예시로 들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리들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단, 관리자나 교사에 대한 얘기는 한국과 미국은 상황이 많이 다르므로 적당히 받아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3장은 나를 포함한 다수에게 적용되는 세상이다. 저임금을 부추기는 "희망" 말이다. 인턴, 열정페이, 착취, 희망노동 등 여러 가지로 불리는 이 언어는 무급 인턴, 계약직 근로자, 겸임 교수 등에 대해서 얘기한다. 정규직이 될지도 몰라, 뛰어난 예술가가 될지도 몰라, 평범한 디자이너는 되겠지와 같은 단어 속에 숨겨진 일상적인 착취의 구성이다. 사실 저런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저렇게 뛰어오른 정규직 속에서도 같은 종류의 희망, 그리고 착취는 일상적이다. 단, 누구나 새로운 자원의 유동성 - 돈의 유동성-을 만들어낼만한 기술과 힘이 없기 때문에 모두들 적당히 인정하고 감수하는 것일 뿐이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세계화가 진행된 시장에서는 결국 많은 것들이 과점 혹은 독점 시장으로 흘러들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언제나 일상화된 착취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어떤 노동자들은 나름대로의 세력화를 구축해서 그 착취를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것도 힘이고 기술이지만,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힘든 일이다.) 이 간극을 평화롭게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손해보지 않는 세상이란 건 없지 않을까? 


마지막 장에서는 "열정"이 근로자의 새로운 자격 요건이 되면서, 열정을 측정하는 방식을 결국은 시간으로 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한다. 더 많이 회사에 붙어 있는 사람이 더 열정적인 것이다. 사실, 그런 것은 없다. 그냥 누가 더 노예질을 열심히 하느냐에 대한 증명일 뿐, 회사에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시간으로 쉽게 드러난다. 업무를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고, 변수도 많은 작업이고 맞지도 않은 반면, 시간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가.


 사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많이들 일중독자의 측면이 있다. 잡스도, 빌게이츠도 (본인은 좋아서, 미쳐서 했겠지만) 결국은 일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띄워준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은 사회 자체가 그런 사람들을 우상화하고 영웅시  하는 것은 아닐까? 그 결과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 역시 더 열심히 더 오랜 시간을 일해야한다는 사상을 체화시키는 것이다.


 근로시간에 대한 연구에서 단기적으로의 초과근무는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즉, 오랜 시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보일수록 회사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산업화 이후에 20세기까지는 근로시간은 점차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왔다. 그러나 대공황과 세계 2차 세계대전이후로 사회의 발전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경제적 발전으로 정의되면서, 근로시간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이후로 경제 회복기간 동안 경제는 성장했지만  노동시간은 늘어났으며 실업과 빈곤은 늘어났다. 따라서 대다수의 인간들은 더 힘들게 더 오랜 시간 일하면서도 소득은 줄어드는 세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서 휴식을 취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생활이 안정된"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전문직들은 오랜 시간 일한다고 하지만 그들보다도 적게 잠자는 계층이 바로 근로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전문직들은 하나의 일로도 삶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하루에 둘 이상의 일을 하면서 수면 시간을 쪼갠다. 그 결과 가장 적게 자는 사람은 소득이 가장 낮은 사람이다.


 저자는 결국 더 적게 일하는 사람다운 사회를 꿈꾼다. 일하는 노동자로서 우리는 이런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어떤가? 그리고 세계의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그들이 이끌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시기에 저자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을까? 


 더욱이 작년 한 해 이루어진 한국의 소득실험은 현재까지는 극명한 실패로 드러나고 있는데 , 아무리 기술과 사회가 발달해도 더 적게 일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인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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