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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책 리뷰/추천책

[책] 숨결이 바람될 때 - 폴 칼라니티

by 크라크라 2018. 2. 27.
숨결이 바람 될 때
국내도서
저자 :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 이종인역
출판 : 흐름출판 201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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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지만 몇몇 위대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참고 견뎌야하는 일이다. 어떤 예술적인 직업이 아니라면, 의사가 되는 직업훈련은 유난히 오래 걸리고, 고된 길을 걷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어마어마한 공부량은 물론이고, 밤낮이 없는 생활을 몇 년이나 견딘 끝에 30대 중반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제 몫을 할 수 있다.


 내가 느낀 이 책의 여운은 바로 그 부분에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30대 중반 레지던트의 끝자락에서, 촉망받는 연구자이자 의사로 여러 곳에서 교수자리까지 제안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그의 삶에서 철저한 방관자이자, 이 책을 읽는 순간 그의 삶을 소비하는 소비자다. 그런 눈으로 보는데도 그의 삶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최고의 길이 눈 앞에 있는 순간 그에게 절망이 들이닥친 것이다. 


 사람들은 먼 곳에 있는 수많은 아픔보다, 자기 자신의 아픔을 훨씬 크게 느낀다고 한다. 이제 막 절정을 향해서 달려올라가는 삶에서 남은 것이 오직 얼마되지 않은 시간과 그 끝의 절벽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도저히 짐작조차가지 않는다.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면서 느낄 감정은 화려하게 피기 직전의 꽃이 어떤 이유로 피지 못하고 떨어졌을 때 느끼는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더 큰 여운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의 놀랍도록 담담한 자기 정리와 그것을 글로 남길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긴 그의 행동력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리면서 떠올린 내용들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어떻게 의사가 되는 선택을 했는지, 의사로써의 삶에 대해서, 다른 의사와의 투병 생활, 암으로 자신이 떠나게 되자 아내와 아기를 가지는 것을 의논하는 것 그리고 암이 나았다고 생각해서 복귀했다가 다시 한 번 암을 발견하게 된 순간, 딸에게 남기는 이야기까지 많은 에피소드와 생각을 마치 흑백사진을 찍어놓고 옆에서 하나 하나 설명해주는 것처럼 부드럽게 글을 적어나간다.


 사람은 유한성에 굴복해야하는 존재다. 하지만,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을 가진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폴 칼라니티는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고, 우리는 그가 남긴 한 권의 유산을 볼 수가 있다. 비록, 그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풀어놓은 책은 아니지만 그 자신의 삶을 조곤조곤하게 서술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의 일부분을 같이 느껴보게 된다. 


 가끔 책을 보다 보면 모두에게 (뉴턴의 프린키피아 같이) 위대한 결과물이라고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보관할 가치가 높다고 보기도 어려운 책이지만 너무나도 보석같이 빛나면서 아련함이 느껴지는 책이 있다. 저자가 유명한 사람이고 아니고도 상관없고 글을 잘 쓰고, 못쓰고와도 상관없이 책에 담겨 있는 그 진솔함과 항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담담함이 우리에게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이 여운을 한 번쯤은 꼭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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