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르 소설 리뷰/추천책

[책] 사천당문 (3권 완) - 진산

by 크라크라 2018. 6. 18.

평점 : ★★★☆ (4.0)



 최근의 장르소설의 흐름과는 좀 맞지 않는 분량이다. 2015년에 나온 책이지만, 이 때도 이미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는 작가들이 점점 큰 세계관과 아기자기함과 세밀(?)함에 좀 더 포커스를 두고 책의 분량을 늘려서 책을 써나가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간만에 과거의 무협을 추억하게 해준다. 사실 무협도 여러 종류의 무협지들이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 전생, 깽판, 천상천하유아독존 등..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주는 어떤 것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매우 담백하고, 절제되어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거기에 짧은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잘 마무리 지은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사천당문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사천당문에서 태어난 "당군명"이 태어나서 사천당문의 가주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하고 있을 때, 조상들을 기리는 곳으로 떠난 사천당문의 모든 남자들은 원인불명의 폭발로 인해 모두 사망하고 사천당문은 망연자실한채로 봉문한다. 그리고 그녀가 성년이 된 이후 그녀가 가주로 인정받기 위한 세 가지를 달성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출생의 비밀, 출생의 비극 같은 것들은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고 아름다운 클리셰이다. 그러나 무협의 세계에서는 그것은 십중팔구 비극이 된다. 알아야하지 말 것을 알게 되거나, 유복자로 태어나거나, 그것으로 인한 무거운 짐을 질 수 밖에 없는 세계이다. 주인공도 그러한 무거운 짐을 떠안고 태어난다. 그리고 태어난 시기가 시기인만큼 가문의 짐만이 아닌, 가문의 모든 남자들을 잡아먹고 태어났다는 비난까지 안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말이 적고, 우울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는 사명감이 그런 우울감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수많은 위기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나름대로의 기지, 그리고 그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충복, 중간에 등장해 그녀에게 반해버린 원수가문의 남자. 이런 것들의 구성 하나하나가 모두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꽤 좋다. 무리가 없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슬픔을 더욱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실 많이들 얘기하는 것이 많은 무협지의 독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인기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탄생시키는 방법 이외에도,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여성성을 많이 노출시키지 않는 방법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렇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의 이름을 받았고, 불가피하게 어려운 삶을 감내해야했으며 짧은 분량으로 인해서 연애에 분량을 할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큰 흐름 속에서 여자라는 개체성은 가지지만 그 정체성이 많이 노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자임에도 리더, 군주가 가져야할 덕목, 재지, 담대함과 각오에 더 많은 방점을 두고 있고 그래서 여성이라는 개체성이 오히려 하나의 새로운 개성으로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여성성이 많이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아쉽지만 말이다. 


 주인공의 주변 중요한 인물이 여럿이 있으나 각자의 목적성, 각자의 정체성을 간결하게 정의해두고 특별히 위계를 침범하거나 정의된 부분을 넘어서는 인물이 없다. 그만큼 정교하게 구성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번쯤 읽어보면 소소한 기쁨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읽어보길 권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