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 ★★★☆☆ (3)
개인적인 취향이랑 맞아서 별점은 꽤 높게 줬지만, 사람들에 따라서는 전혀 관심 없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적당히 점수를 줬다. 그래서 추천하지는 않는 편이다. 예전에 비해서 인기가 훨씬 올라갔다지만, 현대 판타지를 과학자를 보려고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마이너한 분야에서도 열심히 쓴 책이 나오고 있다는 증명 같은 책이기 때문. 다른 것보다는, 상당한 장편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 작가의 뚝심을 좋게 평가하고 싶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박사급 연구자이기 때문에, 일반 장르 독자들이 원하는 타입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어떤 독자든 마음 한 구석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올곧은 사람이라는 점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소설의 주인공 류영준은 소아 간암으로 동생을 떠나보내고, 암을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연구자이다. 한국의 세계적 수준의 대기업 제약회사 "에이젠"에 다니는 그는 벤처 회사가 개발한 결과물을 본인 회사와 비교하여 해당 물질이 더 뛰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올리고, 상부에서는 그의 보고서를 받고 해당 연구물을 사들여서 묻어버린다. 이에 격분한 류영준은 연구소장과 충돌하게 되고, 그는 회사의 골칫덩이들이 모이는 부서인 "생명창조부서"로 좌천되게 된다.
이 부서에서 "로잘린"이라는 물질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구경을 하다가 실수로 다치고 그의 혈액이 섞이면서 새로운 인공생명체가 창조되어 그의 내부에 자리잡게 된다. 놀랍게도 그 생명체는 모든 종류의 현상을 분석할 수 있으며,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조언자였다.(이미 여기에서부터 작가의 상상력이 이미 치사량을 넘어간 소설이라는 점은 감안해두자.)
이 때부터, 류영준은 유망했지만 좌천된 연구자에서 손을 대는 것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인류가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치료하는 구세주가 되기 시작한다. 줄기세포 배양,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당뇨 치료제, 간암 경구형 치료제 , 인공배양육, 원가 절감 등등.. 하나하나가 전부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개발에 성공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물학, 의학, 약학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마어마한 것이 느껴질 정도의 성과들이다. 사실, 약을 개발하는 부분은 누가 보더라도 재미가 없을 수 있다. 주인공은 그냥 "로잘린"이 제시해주는 것을 그대로 줄줄 읊어대면서 무조건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을 진행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개발하는 것에는 거의 위기라는 것이 없다.
놀랍게도 이 책에서 진짜로 재밌는 부분은 그것이 아니라, 힘 없는 가난한 연구자였던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되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세계를 구원해나가는 와중에 벌이는 정치적인 일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그 브랜드 가치를 이용하면서, 적재 적소에 자신이 가진 능력들을 원하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단순한 연구자에서 세계적인 제약기업의 탑이 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자신을 위협하는 정적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흔히들 독자들이 연구자라는 스테레오 타입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거리가 매우 멀다.
올곧은 이상을 가지고 인류의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쉴 틈 없이 노력하는 연구자이면서, 그 자신이 만들어낸 물질들을 이용하여 노회한 정치가들 이상의 정치력을 보여주면서, 불의에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여러 종류의 잡지식과 어떤 일들 뒤편의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내용을 책에 많이 녹여두었다. 그런 사소한 부분들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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