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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걸으면서 느끼는 행복.

by 크라크라 2018. 3. 4.

 오늘(지금 이 글을 새벽에 작성하고 있으니 어제라고 해야겠지만) 오랜만에 한 시간 이상 길을 걸었다. 날씨는 10도 이상으로 아주 좋았고, 햇빛은 따스했다. 왠일로 황사나 미세먼지도 딱히 있다는 느낌을 못 받았고, 당장 할 일도 없었다. 그냥 가야할 곳만 있었고, 정해진 시간도 목적도 없었다.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머리를 자르고 들어가자라는 내 의지만이 온전히 내가 갈 곳을 정했다. 하루, 아니 대략 한 시간 정도였지만 잠깐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잠깐만이라도 걱정을 다 내려놓은 느낌을 받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비록, 내가 지금 도시에 있다는 것과 내 옆에 같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괜찮다. 도시에서는 도시만의 감성이 있는 법이고, 때로는 혼자가 좋기도 한 법이니까.


 나는 햇빛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지는 않을테지만, 유난히 햇빛의 온기를 느끼는 걸 즐겼다. 집 안에 있을 때는 귀찮아서 잘 안나가지만, 밖에 나갔을 때 약간 선선한 바람이 나를 휘감으며 지나가고 햇빛은 나를 따스하게 감쌀 때의 그 아늑함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어떤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느낄때면 내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곤 한다. 비록, 얼마 안되는 시간이더라도 말이다. 


 그러고보면 오늘 이런 느낌을 맞이 한 것도 갑자기 생긴 변덕 때문이다. 잠깐 일이 있어서 집 근처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거리를 착각해버렸다.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를 한 정거장으로. 그래서 "오늘 날씨도 좋은데, 걸어가볼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는 한참을 걸었다. 걷다가 중간에 위치한 정거장을 찾고 나서야 내가 걸어야 할 거리가 두 정거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생각보다 오래 걷더라니. 가까워지지 않더라니만은. 


 그것을 깨달은 위치에서 내가 목표로 하던 지하철 역의 사이에는 천이 있다. 생각보다 넓고, 내가 들어가본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는 얕다. 특히, 비가 얼마 오지 않았었기에 더욱 더 수심은 얕았던 모양이다.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은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것이다. 나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굳이 하지는 않는 짓인만큼, 보통은 강을 걸어서 건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강을 건너는 순간에는 보통 혼자다. 주변에 차가 다니는 소음이 조금 신경쓰이기는 하지만, 소음도 한귀로 흘리고 시선을 강이나 둔치로 돌려보면 나면 마치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장면을 감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있을 때 보는 맛도 각별하지만, 걸으면서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왠지 나 혼자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다리를 건너던 와중에 청둥오리 떼를 발견했다. 겨울만 되면 잘 보이는 녀석들인데, 항상 볼 때마다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다가가보고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둔치와 강 한 가운데, 다리와 강 한 가운데는 거리가 너무 멀다. 날아올랐다가 날개를 접고 강 위에 착수하는 것도 좋지만, 머리를 뒤집어가면서 졸고 있는 모습도 좋고, 강 한가운데서 한 가로이 발을 놀리며 헤엄치는 것도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왠지 청둥오리는 그냥 보면 좋다. 


그렇게 잠깐 청둥오리들을 지켜보다가 강을 마저 건넜다. 건너기 시작할 때와는 마치 도시를 벗어난 것처럼 느껴지는데, 조금만 지나서 내려가보면 어느새 다시 도시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강을 건너서 나는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은 언제나 그렇듯이 목적성이 없이 갈 때야말로 좋은 공간이다. 제목만 슥 둘러보고 책을 뽑았을 때, 좋은 걸 뽑았다 싶으면 사는거고 아니다 싶으면 목차만 훑어보고 다시 꽂아둔다. 가끔, 사람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좋은 책을 발견하면 어찌나 좋은지. 오늘도 항상 말로만 듣고 책을 보지는 않았던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몇 권 손에 집어들었다. 책을 좋아한다면, 이름은 들어봤을 "눈 먼 자들의 도시" 같은 책들 말이다. 그렇게 집어든 책을 계산하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와버렸다. 안타깝게도, 이젠 해야할 것을 다시 고민해야할 시간이다. 그럼 집으로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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