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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봄이 오는 느낌

by 크라크라 2018. 3. 16.

 1년 중에서 특별히 기쁘거나 하지 않은데도 유난히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바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것을 체감하는 날들이다. 이 날들은 괜히 한 것 없이도 좋다. 


 어제와 오늘은 진짜로 봄이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날이었다. 어제는 봄이 주는 느낌 그대로의 따스함과 푸른 하늘로, 오늘은 우리가 봄비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부슬비가 내렸다. 나는 언제나 좋아하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는데 따뜻한 햇볕 쬐면서 잔디밭에 누워서 바람쐬는 것이랑 비가 오는 날 비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새벽에 내리는 비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러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특히 여름의 장대비는 장대비대로, 봄의 부슬비는 부슬비대로 , 가을의 추적추적한 비는 또 그대로, 겨울의 메마른 듯한 비는 또 그런대로 각자의 느낌이 있다. 한 2~3년전부터는 비도 왔다가 안왔다가하고, 보통은 여름에 스콜처럼 몰아오고 이래서 비의 그 느낌을 음미할 그런 기분조차도 잘 안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은 새벽에는 약간 많이 내리는 것 같으면서도 정연한 느낌의 비가 왔었고, 아침이 되니 부슬비가 내렸고, 오후에 잠깐 그쳤다가 저녁이 되니 내릴락 말락 하늘에서 살짝 물이 떨어지는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비가 내렸다.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비의 느낌을 즐기만한 여유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실내에 있을 때 비가 오는 느낌은 하여간 냄새부터 시작해서 참 좋다. 


 다만, 밖에서 움직여야한다면 참 고역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귀찮고, 아 요새는 미세먼지가 많으니까 이거 엄청 안좋은 물이겠지? 꼭 최대한 안 젖게 하면서 다녀야 겠다는 생각도 귀찮다. 실제로 들고 나가는 것도 싫고, 우산을 접고 대중교통에 낑겨서 타는 것도, 퇴근 길에는 다시 그 접힌 우산을 들고 돌아와야한다는 것도 사실은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기분 하나하나를 느끼게 해준다는 그 사실 자체가 소중하다. 요새는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으니,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데다가 나는 원래 성향상 기분이 크게 왔다갔다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약간의 기복조차도 묘하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어제와 오늘..이틀만에 어느새 완연한 봄이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내일은 비가 내리고 나서 어느새 온도가 3도 정도라고 하니 벌써 꽃샘추위까지 한 번 더 들이닥칠 모양이다. 겨울이 워낙 추웠기 때문에 봄이 좀 빠르게 온도가 올라왔나 싶더니만은 자연은 언제나 인간에게 심술이 심하다. 이번의 심술은 좀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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