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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무기력

by 크라크라 2018. 3. 30.

나는 무기력함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가 제일 무섭다. 


 흥분, 공포, 슬픔, 즐거움 이런 감정들과는 다르게 무기력만은 그 모든 감정의 변화를 죽여버리고 나를 가라앉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느끼는 무기력은 돈 때문도, 일 때문도 아니고 건강 때문이라서 더 답답하다. 돈은 적건 많건 어떻게든 벌 부분이 있을 것이고 일이 잘 안 풀려서 화가 나건 일이 잘 풀려서 즐겁건 어찌됐던 내 감정을 어떤 방향으로 온전하게 이동시켜 준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무기력은 나의 감정을 죽여나가고 줄여나간다. 


 나는 옛날부터 꽤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의 감정에 집중하기 보다는 나의 바깥에 집중할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공부, 게임, 놀이, 책,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 수 많은 것들이 나의 관심을 외부로 돌려주었다. 이런 것들에 있어서 실패할 일도 없고, 실패하더라도 털고 가면 그만이라는 점이 즐기면서도 나를 여기에 얽매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정확하게 외부로 내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도 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것은 그대로이지만, 감정이 마모된다고 해야할까. 모든 것을 내 안으로 돌려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바깥으로의 끈을 하나씩 정리해왔다. 그러다보니 다른 것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무기력이라는 감정을 더 자주,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죽을 병, 혹은 심한 중병에 걸린 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일까 지금도 매일 궁금하다. 나의 아픔은 많은 것들이 나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에서 온다. 어느 순간부터 무릎이 아팠고, 자전거를 이제는 5분이상 탈 수 없게 되었으며 그렇게 아픈지 10년이 되었다. 10년 동안 시름 시름 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의 심력을 많이 소모하게 만들었고 나는 점점 더 안좋은 쪽으로 생각하게 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일을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목디스크에 이제는 손가락에 통증까지 생겼다. 매일 등이 아픈 건 덤이고.

일상생활의 제한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자제하게 된다. 운동을 예전에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아예 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 된다. 하고 싶을 때 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새삼 실감한다.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것은 어땠을까. 그럼 헤어짐이 아쉽지 않고, 헤어짐이 아프지도 않았을테데라고 말이다. 같은 수준에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비슷한 원리로 아프고 나서야 새삼 건강한 몸, 기력이 있는 신체가 그리워진다. 더 행복할 수 있는 근간이 되어줄 수 있는 건강한 몸 말이다. 운동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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