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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초등학교 - 평온함의 공간

by 크라크라 2018. 3. 31.

 나는 사실 초등학교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가지는 성냥갑을 눕혀놓은 것 같은 반듯한 모습과 그 앞에 놓여있는 탁 트인 운동장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는 탁 트여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도시의 삶에 파묻히다보면 약간이라도 넓은 공간은 놓치기 십상이다. 작은 집을 떠나, 사람들로 가득찬 길을 걷고, 더 많은 사람들로 가득찬 버스와 지하철에 갇혀서 회사로 배달되고 나면, 회사라는 또 다른 막혀있는 공간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아등바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보다가 초등학교가 보여주는 넓음과 주로 1~2학년들이 보여주는 천진난만함과 활기가 나를 치유하는 모습이다. 저렇게 자유로운 시간이 또 있을까? 초등학생일 때는 저것조차도 속박으로 느껴졌지만 이제 졸업한지 수십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다시 초등학교를 바라보면 또 그만큼 자유로운 시기는 더 이상 있기가 어렵다. 사회적 시선, 경제적 부자유, 정치적 올바름. 많은 것들이 우리를 구속하게 된다. 때로는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 혹은 자신만의 기준이 스스로를 속박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괜한 변덕으로 부모님이 운동하러 가는 길을 같이 걸어서 따라나선 참이었다. 비록 나는 심한 몸살감기에 걸려서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유난히 오늘은 따뜻하고 선선한 날이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약간 구름이 낀 것 같긴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오늘 같은 날은 정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걸음의 끝에 초등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몇 명의 꼬맹이들이 한 참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운동장은 꽤 넓었는데, 아이들이 적어서 더 넓어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이 같이 공을 차고 있는 장면은 약간 재미있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주말이나 방과 후에는 운동장이 꽉 차게 노닥거리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때의 기억을 살짝 더듬어보면 공을 차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자애들이었고, 여자애들은 정글짐이나 시소 같은 놀이기구 주변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뀐 것일까? 아니면 그냥 저 어린이들이 그렇게 노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겨서 학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이제는 알기 어려워진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장면들을 아무 생각없이 어딘가에 걸터앉아 볼 수 있다는 약간의 행복과 그 행복을 만끽하는 시간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순수하게 무엇인가를 기뻐할 수 있는 장면을 봐야만 느껴진다는 것이 살짝 씁쓸하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좋은 장면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잠깐의 여유, 잠깐의 행복. 조금만 더 자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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